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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권한 합방 『한국구비문학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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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홀로 되신 지 15년. 헛기침 소리 하나로 집안을 얼어붙게 만들던 엄격한 시아버지가 밤마다 남몰래 담장을 넘는다? 꼬리를 밟은 며느리가 목격한 것은 주막의 늙은 과부와 마주 앉은 시아버지의 쓸쓸한 뒷모습이었습니다. 양반가의 체면을 운운하며 길길이 날뛰는 아들들을 단숨에 제압하고, 시아버지의 황혼 혼인을 위해 두 팔 걷어붙인 지혜로운 며느리의 통쾌하고 가슴 따뜻한 야담이 지금 시작됩니다!
※ 1: 달밤에 이어지는 시아버지의 은밀한 외출
첩첩산중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는 경상도 어느 고을. 으리으리한 솟을대문을 자랑하는 최 대감댁은 고을에서도 내로라하는 뼈대 깊은 양반 가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번듯하고 화려한 기와집일지 몰라도, 그 대문 안으로 한 걸음만 들어서면 숨이 턱 막힐 듯한 차갑고 무거운 적막만이 집안 전체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집안의 가장인 최 대감은 십오 년 전 불츠비의 병으로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뒤, 단 한 번도 소리 내어 웃은 적이 없는 꼬장꼬장하고 엄격하기 짝이 없는 노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안방마님을 잃은 뒤 집안의 웃음소리는 자취를 감추었고, 아이들이 마당에서 뛰어노는 소리조차 최 대감의 헛기침 한 번이면 쥐죽은 듯 사라지곤 했습니다.
"에헴! 양반가 자제들이 어찌 이리 경박하게 바깥에서 소란을 피우는 게냐! 당장 글방으로 들어가 천자문을 외지 못할까!"
최 대감의 불호령이 떨어지면, 집안의 모든 식솔들은 마치 찬물을 뒤집어쓴 듯 어깨를 움츠렸습니다.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두려워하며 겉으로만 효도를 흉내 낼 뿐, 그 곁에 다가가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올리는 것이 그들이 하는 도리의 전부였습니다.
이 차갑고 얼어붙은 집안에서 유일하게 온기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첫째 며느리 박씨뿐이었습니다. 박씨는 심성이 곱고 눈썰미가 밝아 집안의 크고 작은 대소사를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처리하는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시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어린 나이에 시집와 집안 살림을 도맡아야 했던 그녀는, 겉으로는 바늘 찔러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처럼 깐깐한 시아버지의 이면에 깊은 외로움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식사 때마다 상에 오르는 반찬을 끄적거리며 허공을 응시하는 퀭한 눈빛, 명절이나 가족들이 모이는 날이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홀로 사랑방에 틀어박히는 쓸쓸한 뒷모습. 며느리 박씨는 그런 시아버지가 안쓰러우면서도, 며느리의 신분으로 감히 어찌할 도리가 없어 늘 가슴 한구석이 답답했습니다.
'아버님께서 겉으로는 저리 강해 보이셔도, 밤마다 사랑방에 홀로 누워 마주할 고독이 오죽하실까. 돌아가신 어머님을 향한 그리움인지, 아니면 그저 늙어가는 것에 대한 서글픔인지... 식솔들이 아무리 많다 한들, 당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짝이 없으니 그 속이 얼마나 타들어 가시겠어.'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며느리 박씨는 시아버지 최 대감의 행동에서 묘한 낌새를 눈치채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일찍 일어나 마당을 쓸거나 가마솥에 불을 지피기 위해 부엌으로 향할 때면, 댓돌 위에 놓인 시아버지의 가죽신에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는 것을 발견하곤 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사랑방 문고리에는 밤이슬을 맞은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평소 바깥출입을 즐기지 않고 해가 지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드시던 시아버지였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잠이 오지 않아 밤마실을 다녀오셨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날들이 하루 이틀 이어지더니, 급기야 보름이 넘도록 매일 밤 반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아침 문안 인사를 드릴 때면, 밤새 어디를 다녀오셨는지 시아버지의 얼굴에는 묘한 피로감과 동시에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알 수 없는 생기가 희미하게 감돌고 있었습니다.
"아버님, 간밤에는 평안히 주무셨사옵니까? 혹여 밤새 어디 편찮으신 곳이라도 있으신 건 아닌지요?"
며느리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최 대감은 흠칫 놀라며 헛기침을 연거푸 내뱉었습니다.
"에, 에헴! 내 몸이 어디가 어때서 그러느냐. 잠자리야 늘 그렇듯 평안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서 물러가 아침상이나 준비하거라."
당황한 기색을 역력히 띠며 시선을 피하는 시아버지를 보며, 박씨의 마음속에는 작은 의구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산책을 다녀오신 것이라면 저리 당황하실 리가 없었습니다.
'분명 무언가 곡절이 있으신 게야. 야심한 밤에 홀로 어디를 그리 매일같이 다녀오시는 걸까? 혹여 가문에 누를 끼칠 몹쓸 병이라도 숨기고 계신 건 아닐까? 아니면 남몰래 노름판이라도 기웃거리시는 건... 아니야, 아버님 성정에 그럴 리는 만무하지. 대체 무슨 연유로 매일 밤 남몰래 대문을 나서시는 걸까.'
시아버지를 걱정하는 며느리의 속앓이는 날이 갈수록 깊어졌습니다. 아들들은 아버지가 밤마다 외출하는 사실조차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자신들의 삶에만 바빴습니다. 결국 박씨는 이대로 두고만 볼 수는 없다고 결심했습니다. 만약 시아버지에게 무슨 흉사라도 생긴다면 그것은 고스란히 집안의 큰 화로 돌아올 것이 자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오늘 밤, 시아버지가 대문을 나설 때 몰래 그 뒤를 밟아보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습니다. 달이 구름에 가려 유난히 어둡고 차가운 밤이었습니다.
※ 2: 주막집 과부와의 애틋한 밀회를 목격하다
모두가 곤히 잠든 깊은 밤, 멀리서 부엉이 우는 소리만이 처량하게 들려오는 삼경(밤 11시~새벽 1시) 무렵이었습니다. 사랑방의 불이 꺼져 있었지만, 박씨는 잠들지 않고 부엌 문틈에 숨어 사랑방 앞마당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끼익- 하는 미세한 마찰음과 함께 사랑방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습니다.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다름 아닌 시아버지 최 대감이었습니다. 평소 입던 화려하고 점잖은 비단 두루마기 대신, 눈에 잘 띄지 않는 칙칙하고 허름한 무명옷을 걸친 채였습니다. 최 대감은 주변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행여나 깨어있는 식솔이 없는지 살피더니, 발소리조차 죽인 채 살금살금 솟을대문이 아닌 뒷담장 쪽으로 향했습니다. 개구멍처럼 작게 나 있는 뒷문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는 시아버지의 모습은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초라하고 다급해 보였습니다.
'아버님... 대체 이 야심한 밤에 저런 차림으로 어딜 가신단 말인가.'
박씨는 가슴을 졸이며 서둘러 검은 치맛자락을 동여매고 그 뒤를 조심스럽게 쫓기 시작했습니다. 최 대감의 발걸음은 생각보다 빠르고 익숙했습니다. 마을의 굽이진 골목을 지나고, 인적이 드문 개울가를 건너 그가 향한 곳은 고을 외곽, 장터 어귀에 자리 잡은 작고 허름한 주막이었습니다.
낮에는 장돌뱅이들과 봇짐장수들로 북적이는 곳이지만, 한밤중의 주막은 불이 모두 꺼진 채 고요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최 대감은 주막 뒷마당으로 익숙하게 돌아 들어가더니, 불이 희미하게 켜져 있는 작은 별채 창호지 문을 가볍게 세 번 두드렸습니다. 탁, 탁, 탁.
"왔소...?"
안에서 들려온 것은 어느 중년 여인의 나지막하고 물기 어린 목소리였습니다. 이내 문이 열리고, 최 대감은 재빠르게 방 안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박씨는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까치발을 들고 별채 창호지 문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불빛을 통해 방 안의 정경이 희미하게 비쳤습니다.
방 안에는 최 대감과, 주막을 운영하며 홀로 늙어가는 과부 댁이 마주 앉아 있었습니다. 과부 댁은 젊은 시절 남편을 잃고 험한 장터 바닥에서 억척스럽게 주막을 운영하며 살아온,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파인 여인이었습니다. 박씨도 오가며 몇 번 얼굴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충격은 더욱 컸습니다.
'아니... 아버님께서 주막집 과부 댁과... 대체 두 분이 무슨 사이이시기에 이 야심한 밤에 밀회를 즐기신단 말인가?'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던 박씨의 귀에, 방 안에서 도란도란 나누는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대감... 이 험한 밤길을 어찌 또 오셨소. 뼈대 있는 양반가 어르신께서 자꾸 이리 미천한 주막 과부를 찾으시다가 행여 고을에 소문이라도 나면, 대감의 그 높으신 체면과 가문은 어찌하시려고 이러십니까. 저는 이제 괜찮으니, 제발 그만 오십시오."
과부 여인의 목소리에는 깊은 수심과 걱정이 서려 있었습니다. 그러자 평소 불호령만 내리던 시아버지 최 대감의 입에서, 박씨는 평생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너무나도 부드럽고 애틋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체면... 그놈의 양반 체면이 무어라고. 십오 년 전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넓고 텅 빈 독수공방에서 홀로 지새운 밤이 수천 번이오. 젊은 날 잠시 정을 나누었던 당신을 평생 잊지 못하다가, 이제야 늙고 병든 몸이 되어서야 당신을 찾아온 이 못난 사내를 용서하시오. 당신이 끓여주는 이 거친 누룽지 한 그릇이, 내 집에서 차려내는 진수성찬보다 백 번, 천 번 내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준다오. 당신 얼굴을 보지 않으면 텅 빈 내 가슴의 한기를 견딜 수가 없는데, 남의 눈초리가 무에 대수요."
"아이고, 대감..."
여인은 눈물을 훔치며 최 대감의 거칠어진 손을 꼭 부여잡았습니다. 두 늙은이는 한참 동안 말없이 서로의 체온에 기대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문밖에서 지켜보던 며느리 박씨의 눈시울도 어느새 붉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아아... 아버님. 겉으로는 그토록 꼿꼿하고 엄격하시던 아버님께서, 속으로는 이리도 지독한 외로움에 떨고 계셨구나. 자식들 앞에서는 평생 양반의 체면을 지키느라 당신의 외로운 심정을 털어놓지도 못하시고, 이 허름한 주막의 과부 댁에게서 겨우 한 줌의 온기를 찾고 계셨다니...'
그것은 단순한 남녀의 불장난이나 치정이 아니었습니다. 인생의 황혼 녘에 다다른 두 노인이, 세상의 차가운 시선과 외로움 속에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기대어 쉴 곳을 찾는 절박하고도 애틋한 쉼터였습니다. 시아버지의 그 나약하고 외로운 속마음을 확인한 박씨는 더 이상 그곳에 서 있을 수 없었습니다. 눈물을 훔치며 조용히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맴돌았습니다.
'이대로 아버님을 남몰래 뒷구멍으로나 다니시는 처량한 신세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며느리 된 도리로서, 아버님의 저 텅 빈 가슴을 채워드려야만 해.'
※ 3: 가문의 체면이냐 노인의 외로움이냐
며느리 박씨가 시아버지의 비밀을 알게 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고을 바닥에는 알음알음 흉흉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고 했던가요. 최 대감이 야심한 밤마다 허름한 무명옷을 입고 주막집 과부의 방을 들락거린다는 소문이 장터 주모들과 머슴들의 입을 타고 기어이 최 대감댁 아들들의 귀에까지 들어가고 만 것입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은 그야말로 노발대발하며 사랑방 앞 대청마루에서 길길이 날뛰었습니다. 가문의 체면을 목숨보다 중히 여기는 조선의 뼈대 있는 양반가에서, 그것도 고을의 존경을 받는 최 대감이 늙은 주막 과부와 밀회를 즐긴다는 것은 가문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엄청난 스캔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형님! 이게 대체 무슨 해괴망측한 소문입니까! 아버님께서... 아버님께서 그 천한 주막집 과부년과 남몰래 정을 통하고 계시다니요! 고을 사람들이 우리 가문을 욕하며 손가락질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합니다!"
둘째 아들이 얼굴을 붉히며 분통을 터뜨리자, 첫째 아들 역시 부채로 마루를 내리치며 언성을 높였습니다.
"오냐, 내 말이 그 말이다! 아버님께서 연세가 드시더니 정녕 노망이 나신 게 틀림없어. 돌아가신 어머님을 생각해서라도 어찌 그런 천박한 짓을 하실 수 있단 말이냐! 당장 아버님께 따져 묻고, 그 과부년의 주막을 당장 때려 부수어 고을에서 쫓아내야 한다. 우리 최씨 가문의 명예를 이리 짓밟히게 둘 수는 없어!"
두 아들은 시아버지의 외로움이나 심정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오직 가문의 체면, 양반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그리고 자신들이 고을 사람들에게 받을 손가락질만이 두려울 뿐이었습니다. 아버지를 향한 배신감과 체면 손상에 대한 분노로 씩씩거리며 사랑방 문을 열어젖히려는 찰나, 조용히 다과상을 들고 다가온 며느리 박씨가 그들 앞을 가로막아 섰습니다.
"서방님, 그리고 도련님. 잠시만 고성을 거두시고 제 말을 들어보시지요."
"부인은 비키시오! 지금 아버님께서 가문에 무슨 먹칠을 하셨는지 부인도 다 들었을 터인데, 어찌 우리를 막아선단 말이오!"
남편의 고함에도 박씨는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단호하고 침착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응시했습니다. 다과상을 마루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그녀는, 치맛자락을 단정히 하고서 남편과 시동생을 향해 입을 열었습니다.
"아버님께서 밤마다 주막에 가시는 것은 저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뭐, 뭣이? 부인이 그걸 알면서도 지금껏 입을 다물고 있었단 말이오? 부인도 제정신이 아니구려!"
"제정신이 아닌 것은 두 분이십니다!"
평소 순종적이기만 하던 박씨의 입에서 벼락같은 호통이 떨어지자, 두 아들은 순간 얼어붙은 듯 입을 다물었습니다.
"가문의 체면이 그리도 중요하십니까? 아버님께서 십오 년 전 어머님을 떠나보내시고 그 길고 긴 세월 동안 홀로 독수공방하시며 얼마나 큰 외로움과 고독에 사무치셨는지, 두 분 중 단 한 분이라도 진심으로 헤아려본 적이 있으십니까?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 몇 마디 올리는 것이 자식 된 도리의 전부라고 착각하며, 아버님의 텅 빈 가슴속에 부는 시린 찬바람은 모른 척 외면하지 않으셨습니까!"
박씨의 날카롭고도 슬픈 지적에 두 아들은 시선을 피하며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아버님께서 남들 눈을 피해 허름한 옷을 입고 밤마다 대문을 나서실 때, 그 발걸음이 얼마나 무겁고 비참하셨을지 생각해 보시지요. 양반의 체면? 가문의 명예? 그것이 늙고 병들어가는 아버님의 차가운 방을 따뜻하게 덥혀주었습니까? 아버님께서 원하신 것은 대단한 젊은 여인이 아닙니다. 그저 당신의 시린 손을 잡아주고, 거친 누룽지 한 그릇이라도 마주 앉아 정겹게 나누어 먹을, 인생의 황혼을 함께할 늙은 벗이 필요하셨던 겁니다!"
박씨의 눈에서는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자식으로서 아버님의 그 깊은 외로움을 채워드리지 못할망정, 어찌 가문의 체면을 운운하며 아버님의 유일한 숨통마저 끊으려 하십니까. 저는 첫째 며느리로서, 아버님의 그 서글픈 밤마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그, 그렇다고 어찌한단 말이오? 천한 과부와 계속 밀회를 즐기시도록 이대로 모른 척 내버려 두자는 것이오?"
남편의 더듬거리는 물음에, 박씨는 눈물을 닦아내며 단호하고 결연한 목소리로 폭탄선언을 던졌습니다.
"모른 척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닙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좋은 날을 잡아, 그 주막 과부 댁을 우리 집안의 새어머니로, 아버님의 정식 부인으로 안방에 모셔 들일 것입니다! 제가 직접 아버님의 합방을 성사시키겠습니다!"
※ 4: 아버님의 합방을 성사시키겠습니다!
며느리 박씨의 폭탄선언은 적막했던 사랑방 앞 대청마루에 그야말로 시퍼런 벼락처럼 떨어졌습니다. 방금 전까지 가문의 명예를 운운하며 분노로 씩씩거리던 두 아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며 그야말로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맏며느리 박씨를 쳐다보았습니다. 숨 막히는 침묵이 아주 잠시 마루를 맴돌더니, 이내 장남인 남편의 입에서 참을 수 없다는 듯 거친 고함이 터져 나왔습니다.
"부, 부인! 지금 내 앞에서 정녕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요? 천하고 천한 장터의 주막 과부를 우리 뼈대 깊은 최씨 집안의 새어머니로, 아버님의 정실부인으로 안방에 모셔 들이겠다니! 이 무슨 해괴망측하고 뼈대 없는 소리란 말이오! 부인이 정녕 미친 것이 아니면 어찌 감히 그런 망발을 입에 담소!"
곁에 섰던 둘째 아들 역시 형의 말에 동조하며 핏대를 세우고 나섰습니다.
"형수님, 방금 하신 말씀은 참으로 선을 넘으셔도 한참 넘으셨습니다! 아버님께서 적적하신 그 외로움이야 자식 된 도리로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으나, 지엄한 사대부 양반가의 법도가 시퍼렇게 살아있거늘 어찌 술이나 파는 주막 어미를 우리 가문의 안방마님 자리에 감히 앉힌단 말입니까. 만약 그런 해괴한 일이 벌어진다면 당장 내일 아침부터 고을의 수많은 선비들과 사대부들이 우리 가문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짐승의 집안이라 욕할 것입니다. 가문의 체면이 진흙탕에 처박히는 꼴을 정녕 보고 싶으신 겁니까!"
남편과 시동생이 펄쩍펄쩍 뛰며 반대했지만, 마루 끝에 단정히 선 박씨의 맑고 깊은 눈빛은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오히려 한심하다는 듯, 꽉 막힌 유교의 허울에 갇혀 진정한 사람의 도리를 보지 못하는 두 사람을 매섭게 쏘아보며 지극히 차분하고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사대부의 법도와 가문의 체면이 부모님의 끓어오르는 피눈물보다 정녕 중하단 말씀이십니까?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가문의 명예라는 그 알량한 껍데기 때문에, 평생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신 아버님을 평생 그 차갑고 외로운 골방에서 고독하게 늙어 죽어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두 분이 배운 진정한 효도란 말입니까? 저 밖의 고을 사람들이 우리를 비웃고 욕한다 한들, 그 사람들이 우리 아버님의 시린 속을 덥혀줍니까? 아니면 아버님께서 병드셨을 때 밤을 새워 간호를 해줍니까, 따뜻한 밥 한 그릇을 차려줍니까!"
박씨의 굽힘 없는 기세와 촌철살인 같은 꾸짖음에 두 아들은 순간 기가 팍 눌려 입술만 달싹거릴 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습니다. 박씨는 답답한 가슴을 억누르며 다시금 목소리에 힘을 주었습니다.
"두 분은 그저 입을 다물고 방 안에 가만히 계십시오. 이 일로 인해 쏟아질 고을 사람들의 모든 비난과 손가락질, 그리고 가문의 어른들이 하실 모진 책망은 모두 이 집안의 맏며느리인 제가 홀로 방패막이가 되어 온전히 감당할 터이니, 아버님의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해드리는 이 일에 더 이상 토를 달지 마시지요. 저는 당장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장에 나가 가장 곱고 좋은 비단을 끊어 새어머니께서 입으실 화사한 혼례복을 지을 것이며, 고을 사람들을 모두 배불리 먹일 성대한 잔치를 준비할 것입니다. 자식으로서 부모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드리는 일에 체면 따위는 개나 주라고 하십시오!"
박씨는 그 길로 굳게 닫혀있던 사랑방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습니다. 밖에서 벌어진 아들들과 며느리의 이 모든 소란스러운 대화를 방 안에서 고스란히 듣고 있었던 최 대감은, 차마 며느리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한 채 이불자락만 덜덜 떨리는 손으로 꽉 쥐고 있었습니다. 평소 그토록 호통을 치며 떵떵거리던 양반으로서의 위엄은 온데간데없었고, 자식들, 그것도 며느리 앞에서 자신의 그토록 은밀하고 수치스러운 비밀이 백일하에 탄로 난 것이 너무나도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인 채 짐승처럼 앓는 소리만 내고 있었습니다.
"아, 아가... 밖이 참으로 소란스럽구나. 내, 내가... 다 늙어서 망령이 났는갑다... 내일부터는 두 번 다시, 다시는 그 몹쓸 주막 근처에는 발걸음도 하지 않을 터이니, 제발 그 사나운 입들 좀 다물라고, 이 못난 애비를 탓하지 말라고 전해주어라..."
최 대감의 목소리는 평소의 쩌렁쩌렁하던 불호령과는 완전히 딴판으로, 너무나도 늙고 초라하고 한없이 작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 한없이 애처롭고 가여운 시아버지의 모습에 박씨는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시아버지 앞에 다가가 털썩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버님... 자식들이 이토록 불효하고 어리석어 아버님을 지난 십오 년 동안 그리도 외롭고 쓸쓸하게 방치해 두었으니, 부디 저희를 크게 꾸짖고 매질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 밤마다 남의 눈을 피해 그 험하고 어두운 길을 홀로 나서실 때, 며느리 된 자로서 눈치를 채고도 모른 척하였으니 제 마음이 어찌 편했겠습니까. 아버님, 더 이상 숨지 마시고 고개를 드시옵소서. 제가 며칠 뒤로 가장 길하고 좋은 날을 잡아두었습니다. 그 주막의 과부 어르신을 이 으리으리한 집안의 안방마님으로, 당당하고 정식으로 모셔 오겠습니다."
"뭐, 뭣이라? 아가... 지금 네가 내게 무슨 엄청난 말을 하는 게냐. 가문의 체면과 양반의 도리가 시퍼렇게 살아있거늘, 어찌 그런 천한 과부를..."
"체면이 대체 무어라고 그리 얽매이십니까! 그놈의 체면이 아버님의 빈속을 채워주고 밥을 먹여줍니까. 아버님께서 진정으로 마음이 편안하시고 행복하셔야 이 집안의 근본이 똑바로 서고 평안해지는 것입니다. 남은 짧은 여생, 떳떳하게 안방에 두 분이 마주 앉아 따뜻한 밥을 드시고 사람의 온기를 나누시며 사시지요. 첫째 며느리인 제가 제 모든 것을 걸고 아버님의 황혼 혼례를 이 고을에서 가장 성대하고 아름답게 치러드리겠습니다."
최 대감은 며느리의 그 깊고 진심 어린 단호한 말에 가슴이 무너져 내려 차마 아무런 말도 잇지 못하고, 굵은 주름이 깊게 파인 두 뺨 위로 십오 년간 참아왔던 뜨거운 눈물만 하염없이 쏟아내었습니다. 평생 자식들 앞에서 눈물 한 방울, 약한 모습 한 번 보이지 않으려 자신을 채찍질해 온 엄격한 시아버지가, 며느리의 그 하해와 같은 따뜻한 배려와 이해 앞에서는 완전히 무장해제되어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어 엉엉 우는 모습은 밖에서 엿듣던 두 아들의 콧잔등마저 시큰하게 만들 정도로 참으로 가슴 저리고 애달픈 광경이었습니다.
※ 5: 체면을 벗어던진 황혼의 혼례
며느리 박씨의 호언장담대로 며칠 뒤, 평소 쥐죽은듯 고요하기만 했던 최 대감댁의 솟을대문 앞은 아침 일찍부터 잔치 준비로 왁자지껄한 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고을 사람들은 뼈대 깊고 콧대 높기로 소문난 양반 가문에서, 그것도 환갑이 다 되어가는 늙은 대감마님이 주막의 늙은 과부를 정실부인으로 맞이한다는 전대미문의 충격적인 소식에, 반은 조롱하며 비웃고 반은 호기심에 가득 차 꾸역꾸역 대문 밖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점잖은 양반네들은 뒷짐을 지고 서서 "말세로다, 참으로 말세야! 근본 없는 천것을 안방에 들이다니 조상님들 뵐 낯이 없을 터인데!" 라며 혀를 쯧쯧 차기도 했지만, 박씨는 주변의 그 어떤 따가운 시선과 수군거림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며칠 밤을 새워 자신의 방에서 직접 한 땀 한 땀 바느질하여 지은, 늙은 신부의 얼굴을 화사하게 살려줄 고운 연분홍빛 비단 혼례복을 정성스레 보자기에 싸서 튼튼한 가마와 함께 주막으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주막의 과부 댁 역시 아침 일찍 며느리가 직접 보낸 화려한 가마와 정성이 가득 담긴 비단옷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연신 눈물만 훔치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이 미천하고 보잘것없는 과부 늙은이를 어찌 감히 그 대단하고 높은 양반댁 안방마님으로... 아니 될 말씀이오. 내가 어찌 그 높디높은 대문 문턱을 넘는단 말이오. 고을 사람들이 다 나를 향해 돌을 던질 것이 뻔한데..."
그때, 가마를 따라 주막까지 직접 마중을 나온 박씨가 과부의 거칠고 투박한 두 손을 자신의 고운 손으로 덥석 쥐며 환하게 웃어 보였습니다.
"어머님, 그런 나약한 말씀일랑 당장 거두시어요. 저희 아버님의 그 깊고 시린 외로운 마음을 유일하게 달래주시고 어루만져 주신 고마운 분이시니, 이제 어머님은 그 어떤 양반댁 마님보다 저희 집안에 귀하고 소중한 어머니십니다. 남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마셔요. 어서 이 고운 비단옷으로 갈아입으시고, 아버님께서 애타게 기다리시는 저희 집 가마에 오르시지요. 제가 끝까지 모시겠습니다."
박씨의 그토록 다정하고 굳건한 위로에, 과부는 마침내 마음속의 두려움을 털어내고 입술을 굳게 깨물었습니다. 며느리의 손길에 이끌려 연분홍 비단옷을 갈아입은 그녀는 조심스럽게 가마에 올랐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꽹과리 소리가 섞인 요란한 행렬 속에서, 화려하게 장식된 가마가 마침내 으리으리한 최 대감댁 넓은 마당으로 쑥 들어섰습니다. 마당에는 평소 볼 수 없었던 화려한 십장생 병풍이 쳐져 있었고, 고을 사람 모두가 먹고 남을 만큼 산더미 같은 고기와 전, 귀한 술이 올라간 떡 벌어진 잔칫상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청마루 한가운데에는 화사하고 기품 있는 남색 실크 도포를 빼입은 최 대감이 서 있었습니다. 그는 십오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던, 입가에 주름이 다 패일 정도로 환하고 벅찬 미소를 머금은 채 가마에서 내리는 늙은 새 신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가마의 문이 열리고, 박씨의 부축을 받아 조심스럽게 마당으로 발을 내디딘 과부의 모습에 사람들은 순간 숨을 죽였습니다.
"오셨소... 험한 길 오느라 고생 많았소."
"대감... 제가 정말 이리 와도 되는 것인지요..."
연분홍 비단옷을 입고 수줍어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푹 숙인 늙은 과부와,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주름진 그 손을 다정하고도 굳세게 잡아끄는 최 대감. 젊은 남녀의 매끄러운 손이 아닌,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늙고 거친 두 손이 마주 잡히는 그 뭉클한 순간, 담장 너머로 구경하며 비웃을 준비를 하던 고을 사람들의 입에서 새어 나오던 비아냥과 수군거림은 어느새 눈 녹듯 사라지고 잔잔한 감동의 한숨과 따뜻한 박수 소리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체면과 신분이라는 그 무겁고 쓸모없는 껍데기를 모두 훌훌 벗어던지고, 오직 서로의 따뜻한 온기에 기대어 선 두 노인의 모습은 그 어떤 젊고 아름다운 청춘 남녀의 화려한 혼례보다도 애틋하고 성스러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를 배신하는 일이며 가문의 체면을 깎아 먹는 짓이라며 끝까지 방문을 걸어 잠그고 잔치 참석을 거부하려던 두 아들들도, 밖의 따뜻한 소란에 못 이겨 슬그머니 마루로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대청마루에 나란히 앉아 서로에게 정겹게 술잔을 건네며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진심으로 행복하게 웃으시는 아버지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자, 그들의 얼어붙었던 마음마저 솜사탕처럼 스르르 녹아내리며 콧잔등이 뭉클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저토록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진심으로 행복해하며 웃으시는 모습을 본 것이 대체 얼마 만이었던가요. 박씨는 빙그레 웃으며 며느리로서 넉넉하게 정성껏 준비한 음식들을 연신 내어오며, 구경 온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술과 고기를 권했습니다.
"자, 다들 눈치 보지 마시고 오늘 우리 아버님과 어머님의 아름다운 혼인을 마음껏 축하해주시며 배가 터지도록 드십시오! 오늘부터 우리 가문은 예전의 그 차갑고 적막했던 양반집이 아니라, 매일매일 웃음이 넘치는 가장 따뜻하고 정겨운 집안이 될 것입니다!"
며느리의 그 호탕하고도 정감 넘치는 외침에, 굳어있던 마을 사람들도 하나둘 무장해제되어 잔을 부딪치며 축하의 덕담을 건네고 춤을 추며 잔치를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찬바람만 쌩쌩 불며 얼어붙어 있던 최 대감댁 마당에 무려 십오 년 만에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따뜻한 웃음소리와 흥겨운 노랫가락이 가득 흘러넘치며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습니다.
※ 6: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해진 따뜻한 가문
새어머니가 정식으로 안방에 들어온 후, 최 대감댁의 풍경은 그야말로 며느리 박씨가 호언장담했던 대로 180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마치 겨울 제국에 봄이 찾아온 듯한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게 변한 것은 바로 예전엔 헛기침 소리 한 번으로 집안의 모든 식솔들을 벌벌 떨며 숨죽이게 만들었던 그 무서운 호랑이 시아버지, 최 대감이었습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안방 문틈을 타고 새어 나오는 두 노인의 다정하고 소박한 웃음소리는 집안 전체의 차가운 공기를 아궁이 불처럼 따뜻하게 녹여주었습니다. 최 대감은 더 이상 며느리가 정성껏 차려간 식사 시간에 밥맛이 없다며 반찬을 끄적거리거나 퀭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지 않았습니다. 새어머니가 손수 뚝배기에 끓여낸 짭조름하고 구수한 된장찌개 한 숟갈에 "어허, 이 맛이 참으로 기가 막히고 구수하구려!"라며 젊은 머슴처럼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고, 식후에는 따뜻한 대청마루에 나란히 앉아 서로의 어깨를 기댄 채 볕을 쬐며 도란도란 정겨운 옛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그의 가장 소중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새어머니 역시 평생 험하고 척박한 장터 주막을 억척스럽게 운영하며 익힌 넉넉한 인심과 삶의 깊은 지혜로 집안 곳곳에 생기와 훈풍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향해 쏟아졌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하여 양반가의 콧대 높은 안방마님 행세를 하며 거드름을 피우기보다는, 오히려 치맛자락을 걷어붙이고 며느리 박씨를 도와 뒷마당에서 함께 장을 담그고, 산에서 캐온 나물을 다듬으며 집안의 든든한 큰어른으로서 묵묵히, 그러나 무한히 다정한 기둥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손주들이 마당에서 조금이라도 시끄럽게 뛰어놀면 최 대감의 불호령이 떨어져 아이들이 울면서 방으로 숨기 바빴겠지만, 지금은 달랐습니다. 최 대감과 새어머니는 흙투성이가 된 아이들을 다정하게 불러 무릎에 앉히고는, 품속에서 달콤한 곶감이나 엿 같은 주전부리를 쥐여주며 허허허 사람 좋게 웃을 뿐이었습니다.
그토록 훈훈하고 정겨운, 진짜 '가족'다운 모습을 매일같이 곁에서 지켜보던 두 아들들의 완고했던 마음도 결국 완전히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과거 자신들의 좁은 식견을 깊이 뉘우쳤습니다.
"형님... 며칠 전 형수님께서 우리에게 매섭게 치셨던 호통이 백번 천번 맞았습니다. 아버님께서 저리도 아무런 근심 없이 편안하고 맑게, 진심으로 행복하게 웃으시는 모습을 매일 보니, 껍데기뿐인 가문의 체면을 운운하며 두 분의 혼례를 결사반대했던 제 자신이 참으로 부끄럽고 어리석은 소인배처럼 느껴집니다."
"그러게 말이다, 아우야. 다 네 형수님의 그 넓은 지혜와 부모를 향한 깊은 효심 덕분이지 않느냐. 양반이라는 쓸데없는 허울에 갇혀 우리를 낳아주신 아버님의 시린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한 우리의 불효를 이제야 뼈저리게 깨달았구나. 형수님께 우리 가문이 큰 빚을 졌다."
어느 선선한 늦가을 저녁, 둥근 보름달이 마당을 환하게 비추는 밤에 온 가족이 대청마루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달빛을 받으며 함께 향긋한 국화차를 마시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최 대감이 며느리 박씨를 향해 참으로 인자하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입을 열었습니다.
"아가야... 네가 아니었다면, 꽉 막힌 내 아들놈들과 나 자신의 옹졸함 때문에 나는 평생 남들의 눈치나 보며 뒷구멍으로 주막을 들락거리다가, 결국 이 넓고 차가운 방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네 그 대단한 용기와 지혜 덕분에 내가 남은 여생을 이리 떳떳하고 사람답게, 참으로 따뜻하고 배부르게 보낼 수 있게 되었구나. 네가 이 늙고 어리석은 아비의 진정한 은인이다. 참으로 고맙다... 평생 네 은덕을 잊지 않으마."
그 말을 듣고 있던 새어머니 역시 눈시울을 붉히며 박씨의 손을 꼭 쥐었습니다.
"내 말이 그 말이다. 나 역시 네가 이리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다면, 평생 험한 주막에서 술시중이나 들며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고 외롭게 늙어 죽었을 게야. 네 바다같이 넉넉하고 고운 마음 덕에 이 늙은 과부가 이런 과분하게 따뜻한 가족을 얻었으니, 내 죽어 뼈가 부서져 진토가 되더라도 너희들을 위해 부처님께 기도하고 또 기도할 것이다."
시아버지와 새어머니의 깊은 진심이 담긴 그 따뜻한 인사에, 박씨는 눈물을 훔치면서도 달덩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제발 그런 과분한 말씀 마시어요. 제가 며느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걸요. 두 분이 이리도 건강하게 서로 의지하며, 아이들처럼 밝게 웃어주시니 그것을 바라보는 저희 자식들의 마음이 백 배, 천 배는 더 든든하고 행복하옵니다. 이제 아프지 마시고 남은 여생, 이 집에서 매일매일 잔치하듯 즐겁고 평안하게만 사시옵소서. 저희가 잘 모시겠습니다."
달빛이 은은하게 부서지는 대청마루 아래, 모처럼 온 가족의 진심 어린 웃음꽃이 만발한 최 대감댁의 정겨운 풍경. 세상 사람들의 차가운 편견과 사대부 양반이라는 답답하고 견고한 고정관념을 보란 듯이 뛰어넘어, 가족의 진짜 온기와 행복을 찾아낸 지혜롭고 강인한 며느리의 위대한 결단은, 그 후로 오랫동안 고을 사람들의 굳은 마음을 울리며 '진정한 효도와 사랑'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참으로 아름답고 가슴 따뜻한 야담으로 입에서 입으로 깊게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체면보다 부모님의 따뜻한 밥 한 그릇, 외로움을 달래줄 벗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워준 지혜로운 며느리의 이야기, 어떻게 들으셨나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보다 가족이 함께 밥을 먹으며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온기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귀한 재산이 아닐까 싶습니다. 며느리의 시원한 결단력과 훈훈한 결말이 마음에 드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부탁드립니다! 다음 시간에도 가슴 따뜻해지는 옛날이야기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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